채비장례
장례 후기
[채비추모장례 이야기] 낯설지만 아름다운 채비장례
- 최고관리자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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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방식의 장례는 기존의 형식적인 장례와는 다른 접근을 제시한다. 고인을 기억하고 안전하게 애도를 표현하는 추모식을 진행하고, 유품을 전시하며 생애사를 적은 조문보를 비치한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가 은은히 흐르고, 생전 영상이 조용히 상영되는 가운데 조문객들을 맞아들이는 하루 빈소 방식이다.
이 방식은 낯섦과 아름다운 느낌을 동시에 선사한다. 대체로 많지 않은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오랜 시간 여유롭게 고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채비에서 제공하는 형식은 동일하지만, 유족이 각자의 형편과 욕구에 맞추어 선택한 장례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고 새롭다는 것이다. 의도했던 것 이상의 느낌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첫 번째 이야기: 시민운동가의 마지막 여정
최근 경험한 세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고인이 혈육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함께 시민운동을 하던 지인들이 많았고, 그중 한 명이 상주를 자처해서 약 한 달 전부터 장례 준비를 논의했다.
많은 손님이 왔고, 고인을 기억할 많은 글들과 사진을 가져왔다. 그를 알고 함께 활동했던 남녀노소가 찾아왔다. 추도사도 많았다. 전 교육부 장관부터 마을 사람까지... '그의 죽음을 보면 그의 삶이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났다.
3시간의 조문과 추모식 시간을 마치고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장례의 마무리는 공동식사였다. 상주 역할을 했던 고인의 후배는 힘든 준비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준비 과정을 통해서 고인을 더 깊이 마음에 담아둘 수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 어색함 속에서 피어난 이해
또 다른 경우는 유품도 많지 않고, 추모식도 거의 약식에 가깝게 진행되었다. 그럴 만한 가족의 사정이 있었다. 우리 각각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어려운 가족사는 언제나 있다. 가족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다. 어색하고 긴장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채비플래너인 나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약식으로 진행하다가는 채비장례의 효능감을 맛보지 못하고, 어쩌면 그냥 일반 장례로 진행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할까 봐서였다.
추모식과 채비장례를 모두 마쳤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고인의 아들 부부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좋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많이 생각하고, 손님들과 편안히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긴장감도 풀리고, 이해도 하게 되고,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라는 영화에서는 장례에 가족끼리 다투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채비장례는 여유가 있어 가족끼리 대화하고 화해하는 장례가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 은하수로의 여행
세 번째 장례는 추모식을 하지 않았다. 다만 유품 테이블을 설치하고, 고인이 좋아하시던 '엘라 피츠제럴드'의 베스트앨범을 틀어놓고, 추모영상을 하루 종일 상영했다. 혹시 식사가 필요한 분들이 있을까 봐 다과를 많이 준비하지는 않았다.
상담이 이루어진 후 며칠 이내에 아버지께서 임종하셔서 준비 시간이 짧았다. 첫날 안치할 곳을 정하는 일에 애로사항이 생겼다. 광역단위 큰 대학병원을 알아보았더니 안치만을 해주지 않았다. 서운했다. 큰 대학병원은 치료뿐 아니라 장례에 있어서도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오로지 상업적인 태도로만 유족들을 대했다. 새로운 장례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유족의 바람을 그 정도라도 받아주어야 하지 않겠나.
지역에 있는 장례식장에 고인을 모신 후, 공간 문제로 3일 후에 공간채비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고인께서 고고학자이셨는데, 따님이 아버지께 올린 작별 인사에서 '은하수에 가셔서도 돌을 수집하며 흥미로운 삶을 사시기를' 기원했다.
마무리하며
준비하는 기간과 채비장례를 진행하는 동안 여러 불편함이 있었을 텐데, 차분하게 함께해 주신 유족들께 깊은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자신의 생애를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애도가 대한민국에 충만하기를…
채비플래너 전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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