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장례
장례 후기
[채비추모장례 이야기] 살아서 듣는 ‘너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
- 최고관리자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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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엘리베이터 4층 버튼이 'F'로 적히는 나라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손으로 자기 장례식을 치르는 자리가 조용히 늘고 있다. 상주도 살아 있고, 조문객도 웃고, 무엇보다 관에 누워야 할 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의 추모식’, 혹은 ‘생전 장례식’이라 부르는 자리다.
장례식은 그 주인공이 참석할 수 없는 유일한 잔치다. 평생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 증언을 듣지 못한 채 우리는 떠난다. 모의 추모식은 이 아쉬움을 풀어 놓는다. 죽음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삶을 한 번 완결해 보는 자리에 가깝다.
방식은 채비 추모식과 비슷하다. 살아온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하고, 낡은 구두나 즐겨 입던 옷 같은 유품을 꺼내 사연을 나누고, 좋아하던 꽃으로 작은 제단을 꾸민다. 사람들이 차례로 헌화하며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네고, 가족이나 동료가 조사를 읽는다. 마지막엔 좋아하던 노래 한 곡, 그리고 다 함께 나누는 소감. 무겁게 시작해도 대개는 웃음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위로 프로그램만은 아니다. 고인 역할을 맡은 사람도, 함께한 이들도 모두 진지하다. 마치 실제 장례식처럼 깊이 몰입한다. 국내 죽음 교육 연구들은 이런 준비 과정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낮추고 삶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녕감을 함께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꾸준히 확인해 왔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보지만, 그 생각을 가족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좋은 죽음의 핵심은 고통이 없는 것,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본인의 뜻이 존중받는 것, 이 세 가지인데, 모의 추모식이 정면으로 다루는 게 바로 이 마지막 지점이다. 말로만 있던 생각을 실제 자리로 옮겨, 미리 나누게 만드는 것이다.
채비는 이 자리를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상시적인 배움의 한 단계로 다뤄 왔다. 채비학교의 정기 강좌는 4~8주 과정의 마지막을 모의 추모식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채비의 첫 모의 추모식 주인공은 광진구 광사넷 이사장이었다. 오랜 시간을 사회연대경제 활동으로 맺어온 동지애가 그날 현장에서 깊이 경험되었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활동은 은평 채비플래너 모임인 '함께채비'가 강좌를 열 때마다 마지막에 진행하는 모의 추모식이다. 모의가 어느새 진짜가 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애도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놀라운 경험이다.
지난해 연말쯤에는 부산에서 반빈곤센터의 공영장례 조문단과 함께, 영화숙·재생원 회장님의 모의 추모식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함께 보듬는 작은 시간을 만들었다. 가장 최근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의 모의 추모식도 있었다. 신장과 간을 나누고 장애인 사역을 이어 온 한 목사님이 주인공이 되어 헌화와 감사를 받은 자리였는데, 그는 "미리 마주한 나의 장례식에서, 나를 기억해 주는 이들을 보며 감명받았다"라고 했다.
모의 추모식은 생전작별식(또는 사전장례식)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개콘보다 재미있게'라는 모토로 광진주민연대 회원의 생전작별잔치를 열었다. 그는 평생을 요양보호사로 일했고, 후배들에게 깊이 존경받는 분이었다. 오랫동안 '나비랑'이라는 웰다잉 정기모임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공부한 뒤, 자신의 삶을 생전작별식을 통해 활력 있고 아름답게 정리했다.
모의 추모식은 각자도생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어!" 오는 10월에 또 한 번의 모의 추모식이 열린다. 이번 주인공은 추경진님이다. 모토는 '울지 않기로 약속해요'. 환하게 웃고, 추경진과 함께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출출할 때 떡볶이를 나눠주고, 더울 때 미숫가루를 따라주던, 한겨울에도 줄 서서 사 온 만두를 건네던 한 사람의 삶을, 살아서 생생하게 나누는 자리다.
채비플래너 전승욱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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