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5.04.22 00:00

[채우고 비우고] 어른의 말



 

내가 올해 육십이 넘었으니 생물학적으로 어른이다.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장’을 하고 있으니 ‘윗사람’이다. 그런데 이 ‘어른’이 참 어렵다. 처음 해 보는 데다, 배운 적이 없으니 어렵다. 어디 학원이 있다면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말하는 것도, 행동거지도 참 조심스럽다.

가끔 어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다. 글을 쓰는 일은 익숙한데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무슨 말을 하지? 분량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원고를 써서 읽어야 하나. 막상 당일이 되면 마이크 잡기 30분 전부터 긴장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어떻게 했지? 고작 5~10분의 인사말인데 이 지경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꾸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뒤져보게 되고, 메모도 하고, 결국 정리하게 된다.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긴다. 어차피 시간은 가고 도망갈 수 없으니까. 믿음은 곧 자신감으로 바뀐다.

어쩌다 어린이들 모임에서 축하 인사말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나이 차가 50년 이상 나는 자리였다. 이전까지 성인들만 상대해온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다시 ‘걱정병’이 도지고 머릿속마저 하얘졌다. 그날이 다가오자 잠도 안 오고 입맛도 떨어졌다. 그 꼬마 인간들이 거인처럼 느껴졌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어른들이 그간 못난 모습만 보여줘서 젊은이들이 어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이들이랴.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전부일 텐데 나처럼 모르는 늙은 어른을 좋아할까. 내 말에 귀 기울일까. 어떤 어투로 말해야 하지? 어김없이 그날이 다가왔고 내 순서가 되었다.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다.

어른은 어른답게, 청소년은 청소년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말해야 한다. 말도 자라야 하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른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강원국 작가가 최근에 펴낸 <어른답게 말합니다>에서는 다음 네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첫째, 오락가락하지 말아야 한다. 머릿속 생각과 내뱉는 말이 따로따로이면 안 된다.

둘째,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어른의 말은 적게 말하면서 많은 것을 들려준다.

셋째, 징징대고 어리광 부리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해 의젓하게 말한다.

넷째, 나답게 말한다. 말이란 곧 나이기에 그렇다.

이런 모든 바탕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한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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