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6.05.15 00:00

[채우고 비우고] 가장 젊은 당신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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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마지막 주, 충무로에 위치한 채비에서 사전 신청자 분들을 대상으로 인물사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촬영을 준비하며 느꼈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 촬영을 신청하실 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생각하는 인물사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3 시절, 대학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외국 여행도 가보고, 봄이면 도시락을 싸서 아직은 없지만 곧 생길 여자친구와 덕수궁 데이트도 계획했었습니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다짐도 그 시절에 했습니다. 다이어리 한 페이지 가득 무언가를 적어두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설렘이 아련하기만 합니다.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접착력이 약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은 이 순간 가장 젊은 여러분의 모습을 담습니다.

촬영 장소까지 오셔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여러분이 품어온 많은 생각과 각오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타인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질문하고, 그 답을 함께 나눕니다. 지금을 기록함으로써, 당신을 추억할 분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모습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보다 스무 살 많은 막내 고모는 미혼입니다.

올해 설 연휴가 끝나던 날, 고모가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간에 사정이 있어 근 10년 가까이 고모와는 왕래가 없습니다. 고모의 투병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20년이 넘도록 사진을 찍어왔는데 고모의 사진이 몇 장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늦기 전에 고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촬영을 통해 힘든 시절 저를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고모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떠올릴 사람들에게 말로 다 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 카메라와 주변 장비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감정들을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니 촬영할 때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해 주세요. 시간이 지나 이 사진을 보게 될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 다운 작은 인사를 건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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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물사진을 위한 몇 가지 팁을 나눠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와 빠르게 교감하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서 감정을 충분히 카메라에 담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진작가 앞에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촬영에 임하는 것은 전문 모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촬영 전 스트레칭을 함께 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합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사진인 만큼, 그 여유로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고 싶은지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분명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겠지만, 멋있게 보이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친근한 안녕이었으면 합니다.


 

석준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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