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6.06.12 00:00

[채우고 비우고]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정리할까?

스웨덴식 미니멀 라이프인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은 죽음을 대비해 단출하게 살다가 가볍게 떠나는 삶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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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집 안 곳곳을 수많은 물건으로 채우며 현재를 살아간다. 잠시 이 자리를 빌려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 물건들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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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는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이라는 문화가 있다.

스웨덴어로는 ‘데스테드닝(Dostadning)’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데(Do)’는 ‘죽음’을, ‘스테드닝(stadning)’은 ‘청소’를 뜻한다. 즉, 데스 클리닝이란 죽음을 대비한 스웨덴식 미니멀 라이프로, 내가 죽은 뒤 누군가가 내 물건을 정리하게 하는 대신, 살아 있는 동안 미리 물건을 버리거나 나누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데스 클리닝은 스웨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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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데스 클리닝이 처음 유행했을 때와는 달리 이를 실천하는 연령층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죽음을 가정하고 주위를 정돈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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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을 가정하면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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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을 꺼내 보며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고, 내게는 쓸모없어진 물건일지라도 이를 잘 사용할 사람을 떠올리며 데스 클리닝을 하다 보면, 의미 없는 것들에 가려졌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더 가치 있게 보낼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본연의 자신을 되찾게 된다. 스웨덴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에는 이러한 희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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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위를 둘러보자. 내가 어떤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지 확인해보자. 잘 입지도 않는 옷들, 신발장에 처박혀 있는 신발들,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먼지 쌓인 물건들…. 이런 것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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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정리할까? 어떤 물건을 남기고, 또 어떤 물건을 버릴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죽음을 가정하고 주위를 정리하다 보면 앞으로의 인생이 훨씬 더 빛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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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일 죽는다면》의 저자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데스 클리닝의 핵심 기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쉬운 것부터 정리한다.

•물건을 정리하며 그에 얽힌 행복한 순간만 떠올린다.

•내게는 쓸모없는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을지 생각한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데스 클리닝 중이라도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자기만의 속도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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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은 시간의 개념을 바꾸는 일이다. 우유와 위스키 중 하나를 택하는 삶과도 같다. 우유는 유통기한이 짧고, 위스키는 매우 길다. 내 삶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남았을까? 그 시간과 속도를 알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데스 클리닝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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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면서 남긴 그 많은 물건과 쓰레기를 내가 죽은 뒤에 누가 치우게 될까? 그렇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 짐을 떠넘겨도 되는 걸까? 내 인생의 시간 계획을 세우고,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일. 생각만으로도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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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은 어렵지 않다. 죽는 날까지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데스 클리닝은 웰다잉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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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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