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4%의 기적] 채비, 삶을 닮은 장례 브랜드
- 2025.08.22 채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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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장례식장 지하에서 이뤄지는 현재의 3일장 문화는 고인보다 형식에, 추모보다 의례에 치우쳐 있다. ‘채비’는 이런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모토 아래, 협동조합 방식의 장례서비스를 시작했고, 도심 속 따뜻한 추모 공간에서 20~30명 규모의 ‘작고 아름다운 이별’을 실천해왔다.
고인의 사진과 유품으로 꾸민 공간, ‘조문보’와 ‘메모리얼 포스트’는 기억과 애도의 밀도를 되찾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채비학교’를 통해 이들은 말한다. 삶을 준비하듯, 이별도 준비돼야 한다고. 채비는 오늘, 장례를 넘어 태도를 제안하는 브랜드다.
장례 브랜드로서 ‘채비’라는 이름은 듣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이 이름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요?
브랜드의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그 철학과 지향점을 담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식의 장례서비스를 운영하면서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바로 대부분의 유족과 상주들이 장례에 대해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장례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갑작스러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정보비대칭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일반 상조회사의 경우, 유족들의 절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 불필요한 소비를 유도하거나, 관·수의·유골함 등의 비용에 대해 과도한 가격을 제시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채비라는 이름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죽음을 외면하거나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인식하고 미리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모토인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는 그런 철학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준비의 방식은 과하지 않되, 정중하고 따뜻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고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슬로건 아래, 삶의 마지막을 가장 사람답고 품위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채비‘는 다양한 장례 브랜드가 아니라 이별을 사려 깊게 준비하는 삶의 태도 그 자체를 지향합니다.
채비가 생각하는 '장례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가장 오래 고민했던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장례란 본질적으로 무엇을 위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나머지 의식이나 형식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장례의 본질은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며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장례라는 행위가 지닌 가장 인간적인 목적이자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장례문화, 특히 3일장 중심의 관행은 장례의 본질과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과정 속에서 정작 고인이 사라진 장례가 돼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직접 경험했습니다. 제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만난 친구가 “어머니 장례는 잘 마무리했어?”
그 순간 깨달았지요.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고인의 삶이 아니라 그날의 형식일 수 있겠구나. 우리는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로 고인을 중심에 두고, 유족의 슬픔과 기억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면, 반드시 3일장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채비'는 장례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실험입니다. 형식이 아닌, 의미를 중심에 두는 장례, 고인이 온전히 주인공이 되고, 유족이 충분히 애도하고, 조문객이 기억하고 함께 떠나보낼 수 있는 그런 이별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채비장례를 인터뷰한 기사가 브랜드 전문 무크지 <Entelechy Brand> 43호에 실렸습니다.
3회에 걸쳐 일부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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