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5.10.02 00:00

[24%의 기적] 채비, 삶을 닮은 장례 브랜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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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존 장례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재 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는 대부분 장례는 경제적·환경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동반합니다. 우선, 시설 이용료부터가 만만치 않습니다. 안치 냉장고, 안치실, 빈소 임대료, 식음료 비용 등 모든 항목이 고비용 구조로 돼 있죠, 문제는 비용뿐만 아닙니다.

장례가 시작되면 상조회사 소속 장례지도사, 접객 도우미, 그리고 외부의 영업 사원들이 본소 안팎에 대거 들어옵니다. 이들은 모두 유사한 제복을 입고 있어서 역할이나 소속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조문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주를 대상으로 한 영업이 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상주는 조문객의 부의금으로 이 모든 비용을 떠안습니다. 한마디로, ‘고인을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상주가 감당해야 할 영업의 현장’이 돼 버린 셈입니다.

이뿐 아니라 병원 장례식장의 물리적 환경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지하에 위치해 습기와 냄새가 가득하며, 겨울철엔 지나치게 덥고, 향 냄새와 뒤섞여 공기 자체가 무겁습니다. 상주는 이곳에서 3일간 정신없이 절하고, 인사하고, 안내하고…. 고인을 향한 애도보다는 ‘절차를 감당하는 일’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이 모든 경험은 유족에게 애도보다 피로와 허탈감을 남기는 장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채비’를 시작했습니다. 장례의 본질은 잊히고, ‘관행’과 ‘산업논리’가 남은 현재의 장례문화를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Q: 채비가 제안하는 새로운 장례문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현재 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는 대부분 채비가 추구하는 장례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중심에 둔 작고 깊은 이별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누가 얼마나 왔는가’보다 ‘어떻게 기억되고 추모 되었는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채비의 장례는 일반적으로 20~30명 이내의 가족과 가까운 지인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흔히 반복되는 육개장과 소주 중심의 식사 자리는 과감히 줄이고, 대신 고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마련합니다. 채비 장례에는 몇 가지 특별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 고인의 사진 30~40장을 모아 만든 슬라이드 영상을 함께 보고

· ‘조문보’라고 부르는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소책자를 참석자에게 나눕니다.

· 고인이 생전에 소중히 여겼던 유품을 모아 유폼 테이블을 꾸미고

· 참석자들은 ‘메모리얼 포스트’라는 편지지에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적습니다.

이 편지는 장례 마지막 순간, ‘메모리얼 트리’에서 전시되었다가 입관할 때 고인의 품에 함께 넣어드리는 작은 의식을 거칩니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인을 중심에 두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별할 수 있게 돕는 장례의 재설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고 아름다운 이별’이라 부릅니다. 그것이 채비가 제안하는 장례문화의 핵심입니다.

Q: ‘작고 아름다운 장례’를 정착시키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새로운 장례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작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조심스럽고, 때로는 미온적입니다.

지금까지 채비의 방식으로 진행된 장례(하루장)는 70건 정도이며, 그중 많은 부분은 코로나라는 특수한 시기를 겪으며 제한된 규모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한 일은 기존의 3일장 문화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3일장)만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며, 누구에게는 너무 크고, 과중한 장례의 틀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결혼식에서는 ‘작은 결혼식’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서는 왜 ‘작은 장례’라는 선택지가 없을까.

이 질문이 채비의 시작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몇몇 대형 카페나 공간에 연락해, 하루 대여를 통해 조용하고 단정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장례’라는 말만 나와도 일종의 거부감을 드러냈고, 공간 대여를 꺼려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확신하게 되었었습니다. ‘작은장례’는 초라해서는 안된다.

작아도 충분히 따뜻하고, 고요하고, 환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원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문화는 시간과 경혐을 통해 쌓이는 것입니다. 저의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이 새로운 장례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채비라는 이름이, 이별의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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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장례를 인터뷰한 기사가 브랜드 전문 무크지 <Entelechy Brand> 43호에 실렸습니다.

3회에 걸쳐 일부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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